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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5 둔주 혹은 소요유: 신경림의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를 읽고
    읽고 잊어버리고 2026. 6. 28. 07:14

     시인의 부고를 처음 들었을 때는 가지고 있는 시집 몇 권을 그저 휘리릭 넘겨 보고 미처 아직 사지 못한 시집 몇 권만 주문하고 말았다. 그런데 1주기쯤에 유고 시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갑자기, 종종 그렇게 하듯이 전작을 읽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고 시집부터 읽고 다시 농무에서 출발해 보자는 계획을 세운 뒤, 시집을 사서 다시 한번 전체를 휘리릭 넘겨 보다가 나는 유고를 맡아 편집한 도종환의 해설 마지막 부분에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시집을 내기 위해 시들을 정리, 분류하고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신경림 시인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좋은 시를 쓰셨다. (…) 생의 마지막까지 좋은 시를 쓴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구십이 될 때까지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 더욱 그렇다.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게 우리가 신경림 시인에게 배워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신경림 2025, pp. 150~151, 이하 쪽수만 기재)

     

     아흔 살까지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을 되묻는 것, 그것은 늙는다는 것이 두렵다는 뜻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죽음보다도 늙는 것을 두려워한다.

     

    죽음이라는 무 앞에서 우리는 형이상학적인 현기증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무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그러나 20세, 40세에 노파가 된 나를 생각해본다는 것, 그것은 ‘타인’으로서의 나를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신체적인 변화 속에는 소름끼치는 무언가가 있다. 어렸을 적 나는 언젠가 어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어안이 벙벙해지고 심지어 극도의 불안에 사로잡히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자기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자 하는 욕망은, 어린 시절에는 보통 어른이라는 지위가 가져다주는 막대한 이점에 의해 상쇄된다. 그러나 늙는다는 것은 마치 불명예처럼 느껴진다. 건강을 잘 간직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서조차, 늙음이 가져오는 신체적인 노쇠는 눈에 금방 드러난다. (Beauvoir 1970/2002, p. 11/13)

     

     서양근대철학회 소속 연구자들의 노년 연구 역시 경험될 수 없는 죽음과 달리 스스로 깊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 쇠락으로서의 노화는 기피되었기 때문에 철학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인문학 분야에서 연구가 잘 진행되지 않았다는 언급으로 시작된다(이재영 외 2025, pp. 8~9). 뇌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뇌도늙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잡힐 것만 같으면서도 아직 잡히지 않는 인지증과 같은 병을 두려워 하면서 마지막까지 지금의 자기 자신이기를 바라며 두려워한다.

     하지만 내가 유고 시집의 마지막 말에 머물러 있던 것은 이런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인의 죽음과 유고 시집 출간 사이에 있던, 불발되었으면서도 지금까지 검은 연기를 메케하게 피워내고 있는 정치적 격변은 나에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들 중에는 불행히도 자신이 헌신했던 구국운동이나 독립운동이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 누구보다 빨리 좌절하고 누구보다 빨리 변절한 사람이 많았다. 제국주의에 대한 싸움을 포기했을 때, 제국주의는 열등한 우리 민족이 따라 배워야 할 모든 것을 가진 선망의 존재로 다가왔다. 긴 역사 속에서 보면 이는 민중의 힘을 신뢰하지 못하고 민중 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자들의 당연한 행로였다. (한홍구 2025, p. 51)

     

     우리는 결정적으로 늙기 전에도 바뀐다. 그것도 못나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주를 가졌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느끼고, 자신이 해낼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오히려 변절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래서 우리가 좋은 시를 더 이상 쓰지 못한다면 어떤가. 가끔 떠오르는 그런 한때의 시인들처럼. 그래서 두렵고, 그래서 어떻게 시인은 그러지 않았는지가 궁금하다면.

     

    1
    강을 하나 건너면서 어깨에 진 것 벗어놓고
    산 하나 넘어서면서 손에 든 것 버리고
    이제 나는 빈손, 가볍게 손을 털다가
    깨어나니 간호사가 주사액을 갈고 있다

    다시 길을 떠나면서 주머니 속 물건들 내던지고
    입었던 옷가지도 벗어 던지고 그제야
    아아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다시 눈을 뜨니
    복도를 지나가는 어수선한 발자국들
    꿈에, 문득 생시에 나는 돌아본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가벼운 내 몸.

    2
    퇴원해 돌아오니
    베란다에 활짝 난이 피어 있다
    나는 은행으로 돈을 찾으러 가고
    손자를 데리고 장어를 먹으러 간다
    능으로 산책을 가고
    전철을 타고 멀리 영화를 보러 간다

    다시 병원 갈 날을 두려워 하면서.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내 초라한 손을 펴보면서.
    (둔주, pp. 72~73)

     

     도종환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아흔 살까지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은 세상을 바꾸는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항암 치료를 받는 중 잠시 꿈을 꾸다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로 돌아와 버린 것이 오히려 두려운 사람이다. 하지만 이렇게 죽음 앞에서 삶을 되돌아보며 바뀐 것이 많지 않다는 그런 회한 속에서만, 그 회한을 이해하는 사람만 변절하지 않을 수 있다. 염무웅은 시인의 문학 전반을 돌아보며,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이처럼 차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인 역시 손창섭을 대표로 하는 전후문학 세대의 일원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염무웅 2024, p. 197).

     

    눈보라 치기 전에 길 떠나야겠다
    서른 해 전 옛 노래 찾아 걷던 길 더듬어
    노래 들려주던 사람 다 가고
    하룻밤 묵던 집 헐려 없겠지만
    나는 조금도 쓸쓸해하진 않을 게다
    내가 버리고 온 것들 곳곳에 숨어 있다가
    삐죽이 얼굴 내밀 테니
    반가워하든 외면하든 상관 않고
    나는 모두 주워 배낭에 넣어야지
    평생에 내가 버려도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새삼 생각하면서
    눈보라 치기 전에 길 떠나야겠다
    노래 대신 내가 버린 것들을 줍기 위해서
    (눈보라 치기 전에, p. 55)

     

     그러나 시인은 심지어 그대로인 것조차도 아닌 그런 세상으로 다시 떠나면서도 쓸쓸해하지 않기로 한다. 버려도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은 하찮은 것이 없다는 것이며, 그것은 어떤 것이 주어져도 섭섭하지 않다는 뜻이다.

     

    밝은 눈과 젊은 귀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흐린 눈과 늙은 귀에 비로소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그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끝내는 날이 될지라도.
    (소요유발췌 p. 19)

     

     그렇게 섭섭함을 느끼지 않을 때에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무언가를 알아내고자 할 때에만, 흐린 눈과 늙은 귀에도 무언가가 새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새로 보이는 것은 대단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전한 것이다.

     

    그 느티나무는 아주 작아졌다.
    비바람에 많은 가지가 꺾이고 군데군데 뿌리도 줄기도 썩어 문드러졌다.
    동무해 지내던 수유나무며 은행나무는 베어진 지 오래다
    가을이면 붉노란 잎으로 덮어주던 초가지붕들은 이제 투박한 슬레이트로 바뀌었다.
    애걔, 이렇게 이 나무가 작았었나!
    오래간만에 찾아오는 낯익은 얼굴들은 놀라지만

    나한테 그 느티나무는 늘 크다.
    꿈속에서만 크고 기억 속에서만 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커서 늘
    나를 덮고 마을을 덮고 끝내는 세상을 다 덮는다
    (큰 느티나무, p. 47)

     

     나는 자라고 세상은 작아질 때, 시인은 좋은 시를 쓸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자라지 않고 세상은 그대로 그렇게 클 때, 그렇게 세상이 보여야 그때야 평생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편에서 소박한 생활 감정을 노래하면서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구와 미학적 긴장을 놓치지 않았던 시인”(나희덕 2024, p. 362)일 수 있게 된다. 시인 역시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하려던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가 길어지자 그는 시 쓰기가 싫어지고 지루해졌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역시 무언가를 하기 위해 시는 무기가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고지식하게 민요를 도입하는 식으로 지나가 버린 추상적 민중을 반영하다가 그저 그 시대의 삶에 깊이 뿌리 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고, “오늘의 내 삶, 우리들의 삶에 충실한 시를 쓰자생각하게 되면서 시 쓰는 일이 조금씩 편하고 즐거워지기 시작했다”(신경림 2004, p. 136)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 * *

     

     노창선은 당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신경림허무주의자 민병산의 삼십여 년 간의 교류가 신경림에게 방랑의 언어를 싹트게 했다고 말한다(노창선 2009, p. 307). 신경림은 민병산이 교유를 맺는 엄격한, 그렇지만 못나고 삐딱한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었으며, 처음에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보이는, 또 한편으로는 그 못나고 삐딱한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서 그와 교유를 맺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특히 노자장자를 읽어보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었는데, 신경림은 민병산의 반응에 놀라 장자를 읽게 되었다고 전한다.

     

    얼마 뒤 나는 『장자』를 읽었고, 그 얘기를 했더니 그는 어느 대목이 가장 인상에 남더냐고 물었다. 무심코 나는 「추수편」의 한 대목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여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아야 한다.’는 대목이 특히 머리에 남아 있다고 하자, 다음날 그는 일부라 나를 찾아서는 들고 다니던 헝겊 가방에서 슬그머니 글씨 한 폭을 꺼내 주었다. 그 무렵 그는 붓글씨 쓰기를 시작해서 아침에는 집에서 글씨를 쓰고, 오후에는 아침에 쓴 그 글씨를 헌 헝겊 가방에 넣고 나와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대지관어원근大智觀於遠近’이라는, 그때 그가 써 준 글씨를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신경림 2009, p. 169)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는 것, 그것은 새롭지만 여전한 것을 보는 것이다. 바뀌지 않는 것 같지만 바뀌고, 바뀌는 것 같지만 조금도 바뀌지 않는 그런 세상을 보는 것이다. 나무들은 베어지고 초가지붕이 슬레이트로 바뀐 풍경에서 여전히 느티나무를 크게 보는 것, 이것을 아도르노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두고 노년기와 유년기가 검열관을 조롱한다고 말했다며 사이드가 주목한 그런 후기성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까(Said 2017/2012, p. 54). 혹은 장자가 노년에야만 비로소 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 외부의 실재와의 대립을 넘어선 최고의 숙련에서 오는 편안함이라는 의미에서의 안일, 주체적으로 즐기는 물아일체의 노동이라고 해야 할까(유병래 2012, pp. 13~14).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얻기 어려운 것이며, 그렇게 다시 도종환의 해설 마지막으로 돌아와 다시 오래 머물게 된다. 그리고 이번엔 신선의 발걸음을 가리키는 보허자를 녹음한 음반에 소요유라는 이름을 붙인 이수진의 가야금 음반을 들으면서, 나의 둔주도 소요유가 될 수 있을까를 간절히 생각해 본다.

     

     

    나희덕 (2024), 수많은 노래는 한 사람의 울음에서 시작되었다: 고 신경림 시인을 추모하며」《창작과 비평, Vol. 205

    노창선 (2009), 신경림 시에 나타나는 장자적 경향성 연구」《어문연구, 어문연구학회, Vol. 62

    신경림 (2004), 시는 스스로 충만한 한 그루 나무, 한국일보 엮음,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우리 시대 문학가 일흔한 명이 말하는…』, 열화당

    신경림 (2009),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문학의문학

    신경림 (2025),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창비

    염무웅 (2024), 신경림 시인과 헤어지는 시간」『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 창비

    유병래 (2012), 장자철학에서의 노년의 삶」《시민인문학,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Vol. 22

    이재영 외 (2025), 철학의 눈으로 본 노년, 아카넷

    한홍구 (2025), 한국의 보수는 왜 민주주의와 접속하지 못하는가」《창작과 비평, Vol. 207

    Beauvoir, S. de (1970), La vieillesse, 1970, Gallimard; 홍상희 & 박혜영 옮김, 노년, 책세상, 2002

    Said, E. (2017), On Late Style: Music and Literature Against the Grain, Bloomsbury, 2006; 장호연 옮김,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문학과 예술, 마티, 2012

    이수진 《소요유: 보허자와 도드리》(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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