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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우유재기迂儒齋記 장서라는 운명에 관하여우유재기迂儒齋記 2026. 1. 11. 05:06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만, 서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다. 그렇다면 이목을 피해 밀회를 거듭하고, 때로는 서책의 몸으로 페이지를 섞어서 방사에도 힘써, 심지어 대를 이을 자식을 낳는 것이 당연한 이치. 터럭만큼도 기억에 없는 책이 시침 뚝 떼고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어라’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일은 간혹 가다 있으나, 꼭 깜박깜박하는 머리가 그 책을 산 기억을 고스란히 상실한 탓이라 할 수는 없으며 실제로는 그 같은 성인의 사정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이 내 외조부, 즉 네게는 외증조부인 후카이 요지로가 장황하게 애둘러서 하던 말이다. 요는, 그렇지 않아도 막대한 요지로의 장서가 아무도 모르는 새 늘고 늘고 또 늘어 산사태가 난 양 서재며 서고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데 대한 변명이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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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우유재기迂儒齋記 카테고리 이름에 관하여우유재기迂儒齋記 2025. 10. 4. 04:30
환기미술관을 다녀왔다. 환기미술관에서는 김환기의 1969년 10월 6일의 일기의 구절,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 생각하라”(김환기 2019, p. 61)에서 부제를 따온 《심상의 풍경: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을 중심으로 세 개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모색 중인 것이다. 최지혜는 이 전시의 주제인 김환기의 뉴욕 시대를 크게 3기로 나누는데(최지혜 2025), 당연히 전시는 이 각 시기를 대표할 만한 완성작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작품과 작품 사이에 여러 스케치를 둠으로써 김환기가 어떻게 아직 모르는 것을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전시나 도록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라 나는 이 스케치가 너무 반가웠는데,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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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우유재기迂儒齋記우유재기迂儒齋記 2025. 8. 24. 04:20
차제구화借梯救火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사다리를 빌려와 불을 끄려 한다는 뜻이다. 조나라 사람 성양감은 집에 불이 나서 불을 끄려는데 올라갈 사다리가 없어, 자기 아들 육에게 분수씨한테 가서 빌려 오라고 시켰다. 육은 성장을 하고 태연한 모습으로 (분수씨 집에) 갔다. 분수씨를 만나고 나서 세 번 읍을 한 후 대청으로 올라가 아무 말 없이 서쪽 기둥 사이에 앉았다. 분수씨가 손님 영접을 담당하는 사람에게 명하여 주연을 베풀고, 육에게 육포와 육장을 내놓으며 술을 권했다. 육이 일어나 술잔을 들고 마신 다음, 또 주인에게 답례로 술을 권했다. 주연이 끝난 후 분수씨가 말했다. “선생께서 황송하게도 저의 집에 왕림하신 것은 틀림없이 저에게 분부하실 일이 있을 터이니 감히 여쭙니다.” 육이 비로소 말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