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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1 우유재기迂儒齋記
    우유재기迂儒齋記 2025. 8. 24. 04:20

    차제구화借梯救火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사다리를 빌려와 불을 끄려 한다는 뜻이다.

     조나라 사람 성양감은 집에 불이 나서 불을 끄려는데 올라갈 사다리가 없어, 자기 아들 육에게 분수씨한테 가서 빌려 오라고 시켰다. 육은 성장을 하고 태연한 모습으로 (분수씨 집에) 갔다. 분수씨를 만나고 나서 세 번 읍을 한 후 대청으로 올라가 아무 말 없이 서쪽 기둥 사이에 앉았다. 분수씨가 손님 영접을 담당하는 사람에게 명하여 주연을 베풀고, 육에게 육포와 육장을 내놓으며 술을 권했다. 육이 일어나 술잔을 들고 마신 다음, 또 주인에게 답례로 술을 권했다. 주연이 끝난 후 분수씨가 말했다.
     “선생께서 황송하게도 저의 집에 왕림하신 것은 틀림없이 저에게 분부하실 일이 있을 터이니 감히 여쭙니다.”
     육이 비로소 말했다.
     “하늘이 저의 집에 재앙을 내려 화재가 났는데, 지금 한창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 물을 뿌리고자 해도 팔에 날개를 달지 못해, 다만 집을 쳐다보며 울부짖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이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째서 저에게 빌려주지 않습니까?”
     분수씨가 발을 구르며 말했다.
     “당신은 어찌 그렇게 세상물정에 어둡소! 당신은 어찌 그렇게 세상물정에 어둡소! 산에서 밥을 먹다가 호랑이를 만나면 반드시 먹던 음식을 뱉고 달아나야 하고, 개천에서 발을 씻다가 악어를 보면 반드시 신발을 버리고 달아나야 합니다. 집에 불이 나서 이미 불꽃이 타오르는데, 당신이 지금 읍하며 겸양할 때입니까?”
     (분수씨가) 황급히 사다리를 들고 육을 따라갔는데, 도착해 보니 집은 이미 잿더미로 변했다. (최봉원 2019, pp. 40~41)

     

     최봉원은 실용성이 없이 덮어놓고 글만 읽어 세상물정에 어두운 당시 사회의 고지식한 유가 선비들을 풍자한 것”(42)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차제구화 대신 우유구화迂儒救火라고도 쓴다. 정해진 궤도로 가지 못하고 이탈하여 돌아갈 전망이 없는데도, 나는 여전히 드물게 읽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 답답한 삶을 이 우언만큼 잘 보여주는 것이 없었다.

     

     율곡은 이 우유迂儒라는 단어를 스스로를 낮추는 겸양의 표현으로도 썼지만 자신이 비판하는 정치 집단을 가리키기 위해서도 사용했다. 율곡은 향약의 시행이라는 현안을 두고, 이상적인 정치가 당대에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현인 대신들을 유속이라 부르고 비판하는 한편, 오늘이라도 당장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신진 세력도 우유라 부르고 비판하였다(김경래 2017 & 2020). 아무런 방법론의 고민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신이 말하는 의미는 초 장왕이나 제 위왕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초 장왕이나 제 위왕도 분발해서 이룩한 것이 있었는데 주상께서 어찌 못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전부터 사람의 소견이 같지 아니하여 우활한 유학자는 요순의 정치를 아침저녁 사이에 할 수 있다고 하고, 유속은 옛 도는 결코 지금에 행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정치는 모름지기 당우를 목표로 할 것이나, 일의 성과는 마땅히 점진적이어야 합니다. (이이 2016, p. 209)

     

     궤도를 이탈하고 비전만 남은 삶. 하고 싶지만 할 방법을 모르는 삶. 이것을 어리석음이라 부르지 않으면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벼락 맞듯 이루어지는 그런 삶은 당연히 없다. 모든 것은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음은 없앨 수 없어서 어리석음인 것이다.

    Though leave are many, the root is one;
    Through all the lying days of my youth
    I swayed my leaves and flowers in the sun;
    Now I may wither into the truth

    잎사귀는 여럿이나 뿌리는 하나,
    내 젊음의 거짓 많던 허구한 나날
    나는 잎사귀들과 꽃들을 햇살 속에 흔들었는데,
    이제 진리 속으로 시들어 가는 듯

    (Yeats 2001/2011, p. 43/29)

     

     이성복은 예이츠의 이 시, 지혜는 세월과 함께」를 두 번째 행부터 인용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붙였다. “어리석음은 박멸할 수 없다. 늙기 전부터 지혜는 어리석음과 함께 있었던 것. 지혜의 나무 무성한 잎새를 보려거든, 땅속 어리석음의 뿌리에도 자주 물을 줄 것. 잘 자란 나무에 꽃이 피면, 진실이니 거짓이니 그런 시비는 벌이지 마라, 지혜롭지 못한 것.”(이성복, 어리석음은 박멸할 수 없는 것; 이성복 2012, p. 54)

     어찌할 수가 없으니 어리석은 것이다. 나는 도저히 어리석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아무런 방법을 모른다. 이제는 어리석음을 어리석음으로 그냥 두는 수뿐이다. 이것이 옛사람의 흉내를 내며 현실의 공간과 가상의 공간 모두에 우유재迂儒齋라는 이름을 주는 연유이다.

     

    김경래 (2017), 「선조대 초반의 향약 시행 논란과 율곡 이이의 ‘우유’ 비판」《한국학연구》,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Vol. 46, 2017
    김경래 (2020), 「『성학집요의 맥락적 이해, 그리고 두 개의 키워드유속우유」《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회, Vol. 65, 2020
    이성복 (2011),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문학과지성사
    이이 (2016), 오항녕 옮김, 율곡의 경연일기: 난세에 읽는 정치학, 너머북스
    최봉원 역주 (2019), 중국명청우언 (), 명문당
    Yeats, Y. B. (2001), E. Larrissy(ed.), The Major Works, Oxford Univ. Pr.
    Yeats, Y. B. (2011), 허현숙 옮김, 예이츠 시선, 지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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