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003 우유재기迂儒齋記 장서라는 운명에 관하여
    우유재기迂儒齋記 2026. 1. 11. 05:06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만, 서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다. 그렇다면 이목을 피해 밀회를 거듭하고, 때로는 서책의 몸으로 페이지를 섞어서 방사에도 힘써, 심지어 대를 이을 자식을 낳는 것이 당연한 이치. 터럭만큼도 기억에 없는 책이 시침 뚝 떼고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어라’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일은 간혹 가다 있으나, 꼭 깜박깜박하는 머리가 그 책을 산 기억을 고스란히 상실한 탓이라 할 수는 없으며 실제로는 그 같은 성인의 사정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이 내 외조부, 즉 네게는 외증조부인 후카이 요지로가 장황하게 애둘러서 하던 말이다. 요는, 그렇지 않아도 막대한 요지로의 장서가 아무도 모르는 새 늘고 늘고 또 늘어 산사태가 난 양 서재며 서고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데 대한 변명이요, 그것이 복도를 착착 기어 전진하더니 의외로 재주 좋게 계단까지 내려와서 급기야 1층에까지 진지를 구축한 데 대한 변명이요, 마침내 요지로와 그의 애처 미키, 그리고 태어날 가정을 임의로 선택할 수 없었던 자식 넷을 단체로 차가운 봉당으로 걷어 차낼 기세로 일상생활의 터전을 잠식하더니,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하고 심지어 변소에까지 몰염치하게 책꽂이가 들어선 사태에 대한 변명이다. (오다 2015, pp. 5~6)

     

     20211012일자 EBS 프로그램 건축탐구 집에는 은퇴한 법의학자이자 장서가인 윤창륙 씨의 집이 나온다. 사람들이 25천여 권의 장서를 보고 달아 둔 리플에는, 저건 다 짐이라든가,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읽는 게 중요하다던가, 어차피 못 읽는 것이라든가, 책은 소장하는 게 아니니까 기증하라든가, 책 읽을 시간에 다른 일을 하라든가, 그냥 눈감고 내가 세상 사람이다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문장이 쓰여 있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유능한 인물조차 저런 말을 듣고 사니 오다가 소설을 저런 너스레로 시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책을 사지 말라는 사람들이 한편에 있다면, 책을 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더 나아가 책을 사는 것은 지적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와타나베 2011 p. 47), 책 사는 것을 의지의 문제로 바꾸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와타나베는 재능도 중요하겠지만 기계적인 작업 누적이 중요하다면서, 장서가 주는 누적 효과와 효율을 강조한다. 여기에 더해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노년 이후의 활동이다. 즉 도서관에 가기 위해 사용하는 시간과 체력조차 부담스러운 시기가 어떻게든 오고야 만다는 것이다. 학교 도서관을 평생 이용하기도 어렵고, 학교에 적을 두는 것은 더욱 어려우며, 필요한 책을 공공 도서관에서 찾기도 힘들다. 나는 요즘 무거운 가방을 지고 울퉁불퉁한 인도를 걷는 것이, 당장은 견딜 만해도 언젠가는 곧 그렇지 않게 되겠다는 것을 점점 강하게 느낀다. 그러나, 그러므로 도리가 없다. 와타나베는 통찰은 있어 강연을 열면 인기가 있지만 결실을 별로 맺지 못한 다른 학자를 언급하곤, 책은 강연과 달리 논리 정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료와 문헌의 출처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읽는다는 것조차 한편으로는 쓰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다.

     

     각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 첫째, 각주는 설득한다. 각주는 독자에게 역사가가 수용할 만한 양의 연구를 했음을, 그 분야에서 용인될 만한 충분한 연구를 했음을 확신시킨다. 치과 벽에 걸린 면허증처럼, 각주는 역사가가 자문을 구하고 추천을 받기에 “충분히 훌륭한” 실무자임을 증명한다. (…) 둘째, 각주는 역사가가 실제 활용한 주요 사료를 나타낸다. 각주는 보통, 사료의 텍스트를 해석하면서 역사가가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설명하지 않지만, 비판적인 동시에 개방적인 독자가─부분적으로─그 일을 할 수 있게 충분한 단서를 제공한다. (Grafton 2016, pp. 40~41)

     

     잘 읽으려면 많이 준비할 수밖에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읽으면 궁금해진다. 어떤 장대한 꿈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읽다 보면, 좀 더 잘 읽고 싶어지고, 그러면 최대한 많은 문헌을 손에 넣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해도 책은 다 읽을 수 없다. 낭시는 책이 의미를 담고 있는 봉투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Nancy 2005/2016, p. 33/32). 그런 것이라면 의미를 꺼내는 순간 책은 버려지고 말 것이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자격시험이 끝나고 나면 버려지는 교과서와 문제집처럼. 낭시는 책은 봉투 같은 것이 아니라 펼쳐지는 것이고 다시 접히는 것이라고, 덮였다가 펼쳐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펼쳐지고 덮인다. 낭시는 덮여 있는 책조차, 표지나 도안, 조판이나 편집상의 특이 사항, 저자나 출판사의 이름, 광고문구까지도 책 자신의 이데아에만 관계한다고 말한다. 서점에, 도서관 서가에,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은 전시된 실체로서의 책의 이데아라고 말한다(Nancy 2005/2016, pp. 45~48/46~48). 그렇기 때문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분류되어 꽂힌 책의 책등을 읽는 것도 의미가 있고, 그조차도 독서가 된다. 책은 덮여 있을 때조차 책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에코는 카리에르와의 대담에서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5백년 동안 책이라는 물건의 형태에는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기능과 구성 체계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책은 수저나 망치나 바퀴, 또는 가위 같은 것입니다.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을 발명할 수 없는 그런 물건들 말이에요. 수저보다 더 나은 수저는 발명할 수 없습니다. (…) 책은 자신의 효율성을 이미 증명했고, 같은 용도의 물건으로서 책보다 나은 것을 만들어 내기는 힘듭니다. 어쩌면 책을 이루는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변할 수는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책장이 더 이상 종이로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책은 지금의 그것으로 남아 있게 될 겁니다. (Eco & Carrière 2011, p. 9)

     

     때때로 트위터(X)에 쌓여 있는 읽지 못한 책으로부터 전파 같은 것이 흘러나와 자는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우스개처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결코 변명이 아니다. 차라리 사람들은 죄책감을 갖지 말고 더 많은 책을 더 제멋대로 분류하여 쌓아두어야 한다. 그것을 읽는 것 역시 독서이며, 충분히 사유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장서를 거부하는 것은 그저 편견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책도 결국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쌓이기만 할 뿐 버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에코는 햄릿이 걸작인 이유가 문학으로서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해석에 저항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Eco & Carrière 2011, p. 181), 낭시는 책 자체가 출간되지 않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출판사éditeur가 출판하는 것은 이 미간행본이다. 편집자editor는 빛을 보게 하는 사람, 밖에 놓는 사람e-do, 볼 것과 알 것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은 책이 한 번 간행되고 나면 더 이상 미간행본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책은 여전히 미간행본이다. 심지어 더욱더 미간행 상태가 된다. 책은 한낮의 빛에 흔적을, 충실한 가독성에 집요하게 저항하는 자신의 비가독성의 흔적을 내보인다. (Nancy 2005/2016, p. 42/41. 번역 수정)

     

     아무리 펼쳐도 책은 완전히 펼쳐지지 않는다. 어떤 책도 망라되거나 소진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책은 처음부터 읽히기 위한 것이었으며, 다른 독서로 이어지는 것이었으며, 심지어는 글을 쓰는 데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오다의 소설이 말하는 것처럼, 책과 책에서 우리가 모르는 책이 태어나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번 읽기 시작한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고 불행한 장서가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을 하나씩 내던지게 되는 순간은 결코 새로운 책을 읽으면서가 아니다. 장작더미에 던져 넣는 것도 아니고 망각 속으로 내던지는 것도 아니다. 더 멀리, 더 깊숙이 우리가 영혼의 서재라고 부르는 곳으로 그것들을 던진다. 순수 이데아의, 순수이다에를 통한 탐독이 가능한 자유로운 공간으로, 이미 읽은 책, 뭔가를 끼적여놓은 책, 잊힌 채로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책, 열심히 공부해서 내용을 모두 암기하는 책들의 미로, 그리고 소중한 단어들을 담고 있기에 언제나 모습이 떠올라 책장을 만지작거리고 비벼댔던 그런 책들의 미로 속으로.  (Nancy 2025/2016, pp. 56~57/58)

     

     

    Eco, U. & Carrière, J.-C., (2011), 임호경 옮김, 책의 우주, 열린책들

    Grafton, A. (2016), 김지혜 옮김, 각주의 역사: 각주는 어떻게 역사의 증인이 되었는가, 테오리아

    Nancy, J.-L. (2005), Sur le commerce des pensées, Galilée; 이선희 옮김,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 , 2016

    오다 마사쿠니 (2015), 권영주 옮김,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 은행나무

    와타나베 쇼이치 (2011), 김욱 옮김, 지적 생활의 발견, 위즈덤하우스

Designed by Tistory.